전라북도 고창에 자리한 선운산(Seonunsan)은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해발 336m의 명산으로, 천년고찰 선운사를 품고 동백나무 숲으로 이름난 도립공원이다. 높지 않지만 울창한 숲과 빼어난 계곡미를 갖춰 사철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라, 2019년 3월 이른 봄에 선운사를 기점으로 수리봉에 올랐던 그날의 기록을 한 장씩 풀어본다.
풍천장어길에서 시작하는 선운산

선운산 산행은 도립공원 입구의 상가 거리에서 시작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힘나는 선운산 풍천장어길'이라 적힌 큼직한 안내판이었다. 고창 선운산 일대는 갯벌과 민물이 만나는 풍천에서 자란 장어와 복분자가 명물로, 산행 전후로 이 별미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안개에 잠긴 도립공원 입구

상가를 지나자 선운산도립공원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 한쪽으로는 운치 있게 가꾼 분재 정원이 펼쳐졌고, 그 너머로 안개에 잠긴 산자락이 부드럽게 솟아 있었다. 선운산은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1984년에는 국민관광지로도 지정된 곳으로, 입구부터 잘 정비된 모습이었다.
단정한 진입로를 걸어 산으로

관광안내소가 있는 진입로는 기와를 얹은 한옥 건물들이 늘어서 정갈했다. 벚나무가 줄지어 선 이 길은 봄이면 벚꽃이,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드는 구간이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게 산으로 향하는 길을 즐길 수 있었다.
코스를 살피는 안내도 앞에서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도립공원 안내도를 살폈다. 선운산은 선운사를 기점으로 석상암과 마이재를 거쳐 주봉인 수리봉에 오르는 원점회귀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안내도에는 도솔암·낙조대·천마봉을 잇는 더 긴 종주 코스도 표시돼 있어, 체력과 시간에 맞춰 동선을 고르기 좋았다.
선운사 문화재구역 입장료

산으로 들어서기 전 선운사 문화재구역 매표소를 지났다. 안내판에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의 입장료가 적혀 있었다. 만 65세 이상과 신도 등은 면제 대상이다. 선운사라는 천년고찰을 품은 산이라, 산행과 사찰 관람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구조다.
도솔산이라는 옛 이름

손에 쥔 입장권에는 '도솔산 선운사'라고 인쇄돼 있었다. 선운산은 본래 도솔산(兜率山)이라 불렸는데,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쓰이게 됐다. 선운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 도솔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뜻하니, 두 이름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이재 갈림길, 정상이 가까워지다

선운사와 석상암을 지나 완만한 산길을 오르자 마이재 갈림길에 닿았다. 이정표는 수리봉 0.7km, 경수봉 2.2km, 석상암 0.7km를 가리켰다. 마이재는 선운산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목으로, 여기서 왼쪽 능선을 따라 조금만 더 오르면 주봉인 수리봉에 닿는다.
안개가 감싼 능선길

마이재에서 수리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옅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아직 잎을 틔우지 않은 나무들이 뿌연 안개 속에 실루엣으로 서 있어, 이른 봄 산 특유의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선운산다운 길이었다.
선운산 주봉, 수리봉 정상에 서다

마침내 '수리봉 336m'라 새겨진 정상석에 닿았다. 수리봉은 도솔봉이라고도 불리는 선운산의 주봉으로, 선운산이라 하면 보통 이 봉우리를 가리킨다. 일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경수산(444m)이지만, 선운사를 품고 솟은 이 수리봉이야말로 선운산 산행의 중심이다.
336m, 자료마다 다른 높이

정상석에는 336m가 새겨져 있지만, 선운산의 높이는 자료에 따라 334.7m로 적히기도 한다. 두산백과와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은 334.7m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도립공원 공식 자료는 336m로 표기한다. 어느 쪽이든 높지 않은 산이지만,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계곡과 숲을 거느린 명산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안개에 잠긴 정상 조망

맑은 날이면 이 능선에서 멀리 서해 갯벌과 고창 앞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날은 짙은 안개로 먼 풍경이 뿌옇게 가렸지만, 그 대신 겹겹이 포개진 산자락이 수묵화처럼 아련하게 번졌다. 또렷한 조망은 아니어도, 안개가 빚어내는 고요한 정취가 오히려 운치 있었다.
정상 바위에 앉아 보낸 한때

정상 부근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안개에 둘러싸인 채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뿐, 이른 봄 평일의 선운산은 더없이 고요했다. 높이를 다투는 산은 아니지만, 이런 호젓함이야말로 선운산을 다시 찾게 만드는 매력이다.
소나무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하산은 올라온 길을 되짚어 마이재 방향으로 내려왔다. 소나무가 늘어선 능선길은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푹신했고, 안개에 젖은 솔숲은 한층 짙은 향을 풍겼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무릎에 부담 없이 천천히 고도를 낮출 수 있었다.
봄을 기다리는 숲을 지나

잎을 틔우기 전의 나무들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계속 내려왔다. 아직은 메마른 갈색의 숲이지만, 한 달쯤 뒤면 선운사 뒤편 산비탈이 붉은 동백으로 물들 터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운사 동백나무 숲은 4월부터 5월 초까지 절정을 이루는데, 그 장관을 떠올리며 봄을 기다리는 숲을 지났다.
안개 숲 사이 쉼터에서

하산길 한쪽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었다. 안개가 짙게 깔린 숲은 사방이 뿌옇게 번져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철이 모두 아름다운 산이지만, 이렇게 안개에 잠긴 이른 봄의 선운산도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차밭을 지나 선운사로

산을 거의 다 내려오자 차밭을 낀 너른 임도가 이어졌다. 멀리 사찰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산행이 마무리에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선운사 일대는 예로부터 차나무가 자라던 곳으로, 임도 옆으로 펼쳐진 푸른 차밭이 메마른 겨울 풍경 속에서 유독 싱그러웠다.
천년고찰 선운사를 둘러보며

하산길에 만난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때(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대웅전(보물 제290호)과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등 귀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단정한 기와 건물들이 산자락에 안긴 모습에서 오랜 세월의 기품이 묻어났다.
풍천장어로 마무리하는 산행

산을 다 내려오니 출발했던 상가 거리로 돌아왔다. 벚나무가 줄지어 선 거리에는 풍천장어를 구워 파는 노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봄 평일이라 한산했지만, 동백이 피고 벚꽃이 흩날릴 무렵이면 이 거리가 인파로 북적일 것이다. 호젓한 솔숲과 천년고찰, 그리고 별미까지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선운산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봄나들이 삼아 부담 없이 다녀오기 좋은 산이다.
높이를 욕심내는 산은 아니지만, 동백이 붉게 피는 4월이나 꽃무릇이 타오르는 9월에 천년고찰 선운사와 함께 엮어 찾는다면, 고창에서 가장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봄가을 나들이 명산으로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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