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김천과 충청북도 영동에 걸친 황악산(Hwangaksan)은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로 우뚝 솟은 해발 1,111m의 명산으로, 동쪽 기슭에 천년고찰 직지사를 품은 산림청 100대 명산이다. 능선까지는 제법 가파르지만 정상부 능선은 완만해 걷는 맛이 좋은 산이라, 잔설이 남은 겨울 끝자락에 직지사를 기점으로 올랐던 그날의 기록을 한 장씩 풀어본다.
직지사 들머리 주차장에서 시작하다

황악산 산행은 직지사 일대의 들머리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김천 시내에서 서쪽으로 12k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직지사는 황악산 산행의 처음이자 끝으로, 대부분의 등산객이 이곳을 기점으로 원점회귀 코스를 택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잔설이 희끗하게 남은 겨울 끝자락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산행 채비를 갖췄다.
낙서로 뒤덮인 동반자와 함께

주차장 한쪽에는 온통 파란 낙서로 뒤덮인 작은 경차가 서 있었다. 'HOPE'라는 글자가 빼곡한 이 다마스 캠핑카는 어느 산을 가든 함께하는 산행의 동반자다. 겨울 산행은 채비가 더 번거롭지만, 익숙한 차를 곁에 두고 출발하니 마음만은 가벼웠다.
동국제일가람 직지사를 곁에 두고

들머리 인근으로는 직지사와 그 부속 건물들이 자리해 있었다. 외벽을 장식한 산수화와 연꽃 그림이 천년고찰의 격조를 은근히 드러냈다. 직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 신라 눌지왕 2년인 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사명대사가 출가한 절로도 유명하다.
단청 전각 너머 겨울 산자락

단청을 곱게 입힌 전각 한 채가 잎을 떨군 겨울 산자락을 배경으로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직지사는 동국제일가람이라 불릴 만큼 큰 사찰로,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대웅전 앞 삼층석탑 등 여러 국가지정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산을 오르기 전, 오래된 절집의 고요함이 발걸음에 차분함을 더해주었다.
임도를 따라 산자락으로

절집을 지나자 전봇대가 늘어선 임도가 산자락으로 이어졌다. 아직은 완만한 길이라 몸을 풀며 천천히 걸었다.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 사이로 겨울 특유의 메마른 풍경이 펼쳐졌고, 발밑으로는 마른 낙엽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운수암 갈림길에서 본격 산길로

조금 더 오르자 '등산로'와 '운수암'을 가리키는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났다. 직지사에서 운수암까지는 포장도로가 이어지지만, 여기서부터는 흙길의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운수암을 지나는 길은 황악산 원점회귀 코스의 대표적인 들머리로, 많은 등산객이 이 길을 따라 능선에 오른다.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서다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치고 오르자 마침내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섰다. 갈림길 이정표는 황악산 정상까지 2.2km, 직지사까지 2.8km를 가리켰다. 추풍령을 넘어온 백두대간이 괘방령과 여시골산을 거쳐 이 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여기서부터는 대간 마루금을 밟으며 정상으로 향하게 된다.
정상 3000m, 응원을 받으며

능선길에는 '황악산 3000m 힘내세요'라고 적힌 초록색 안내판이 서 있었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알리며 등산객을 격려하는 표지다. 이런 안내판은 일정 간격마다 거리를 줄여가며 나타나, 지친 다리에 작은 응원이 되어주었다.
잔설이 깔린 겨울 오르막

고도가 높아지자 등산로에 잔설이 깔리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곳은 흙이 드러났지만 응달에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 겨울 산의 정취가 한층 짙어졌다. 황악산은 민주지산과 더불어 폭설 산행지로도 꼽히는 산이라, 겨울이면 능선에 제법 눈이 쌓인다.
황악산일까 황학산일까

정상 1,580m를 알리는 안내판에는 '황학산'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산을 두고 정상석에는 황악산, 안내판에는 황학산이 섞여 나타나는 것이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렸고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도 그렇게 표기됐지만, 직지사 현판과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황악산(黃嶽山)으로 적혀 있다. 두 이름이 공존하는 셈인데, 공식 명칭은 황악산이다.
완만해지는 눈 덮인 능선

능선에 올라서자 길은 한결 완만해졌다. 가파른 오르막을 견디고 나면 백두대간 마루금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잎을 떨군 참나무 사이로 잔설을 밟으며 걸으니, 뽀드득거리는 눈 소리가 겨울 산행의 운치를 더했다.
잎 떨군 겨울 능선의 조망

잎을 모두 떨군 겨울 능선은 오히려 시야가 트여, 나뭇가지 사이로 겹겹이 포개진 산줄기가 멀리까지 펼쳐졌다. 여름이면 우거진 잎에 가렸을 풍경이 겨울에는 훤히 드러나는 것이 이 계절 산행의 묘미다. 능선을 따라 걸으며 사방으로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산세를 눈에 담았다.
백두대간 위에 선 산

능선에는 백두대간을 설명하는 해설판이 세워져 있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 황악산은 추풍령에서 잠시 숨을 고른 대간이 다시 솟구쳐 세운 봉우리다. 산악인들이 남한 땅의 정중앙으로 꼽기도 하는 곳이라, 대간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발걸음에 의미가 더해졌다.
해발 1111m, 비로봉 정상에 서다

마침내 정상에 닿았다. '黃嶽山 김천시 해발 1,111m'라고 새겨진 정상석이 너른 정상부에 우뚝 서 있었다. 주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1,111m, 정밀하게는 1,111.4m로, 1이 네 번 이어지는 외우기 좋은 높이다. 정상부는 나무가 키를 낮춰 사방이 트여,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쪽으로 금오산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100대 명산 한 곳을 또 밟다

정상석 앞에서 '100대 명산' 수건을 펼쳐 들고 인증샷을 남겼다. 황악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한 곳 한 곳 정상을 밟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잔설이 남은 겨울 정상에서 펼친 수건 한 장이, 그동안 걸어온 산길의 기록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마른 억새가 일렁이는 능선

하산은 능선을 따라 이어졌다. 정상 부근과 바람재 일대는 초원지대를 이루는데, 겨울이라 억새가 누렇게 말라 바람에 서걱였다. 잔설이 가늘게 남은 길을 따라 마른 억새밭 사이를 걸으니, 빛바랜 겨울 산의 정취가 쓸쓸하면서도 운치 있었다.
겨울 능선을 내려오며

잎을 떨군 나무 사이로 부드럽게 굽이치는 능선길을 따라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양지쪽 눈은 녹아 질척이고 응달은 미끄러워 발끝에 신경을 쓰며 내려왔다. 가파른 계곡길과 완만한 능선길이 어우러진 황악산은, 직지사라는 천년고찰과 백두대간의 능선을 한 번에 품을 수 있어 겨울 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는 산이었다.
겨울 황악산을 계획한다면 직지사를 기점으로 한 원점회귀 코스가 가장 무난하며, 능선의 잔설과 응달 빙판에 대비해 아이젠만 챙긴다면 천년고찰과 백두대간을 함께 누리는 알찬 산행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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