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214.속초맛집 속초카페 도시재생 - 칠성조선소
    마늘의 국내 맛집탐방 2022. 6. 6. 00:18
    728x90
    반응형

     

     

     

     

     

     

     

     

     

     

     

     

     

     

     

     

     

     

    속초맛집 속초카페 도시재생 칠성조선소는 예전 조선소 였던 곳을 카페로 만든 곳이다. 요즘은 전국 곳곳에 이런 도시재생 공간들이 많은데 이 곳 칠성조선소 역시 속초여행 을 하는 사람들은 한 번 즈음 들려보면 좋을 곳이라고. 큰 컨테이너 건물로 이렇게 신축 카페가 있다. 속초맛집 속초카페 도시재생 칠성조선소에서 음료등의 메뉴를 주문한 뒤 받아서 1층이나 2층의 자리로 이동해 즐기면 된다. 나이프, 포크, 스트로우, 냅킨등등은 모두 셀프시스템. 신축 컨테이너 건물이긴 하지만 조선소 느낌의 인테리어를 유지하고 있다. 굿즈도 판매중이다.
    다른 뉴스 등에서 좀 더 이 곳에 대해 찾아보면,
     칠성조선소는 배를 만드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훗날 속초의 부활이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기록할 지 모른다. 속초라는 도시, 상생의 한 축이 칠성조선소에서 나오고 있다. 도시 옛 건물의 의미를 찾고 현대공간으로 성공적으로 재생한 속초에서는 보기 드문 도시혁신 사례다. 칠성조선소 최윤성 대표는 홍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배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미국 보트 디자인 학교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 2014년에 와이크래프트보츠(YCRAFT BOATS)라는 레저 선박브랜드를 만들어서 칠성조선소 야외 공간에서 카누와 카약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그의 Y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썼던 이름이다. 와이크래프트보츠는 'Y가 만드는 수제 보트‘라는 뜻이다. 같은 과 동기동창인 아내 백은정 씨와 이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최 대표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청년혁신가로 지정되면서 보트 투어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경험을 계기로 이후 칠성조선소를 복합 문화공간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속초시 한복판, 교동에 있는 칠성조선소는 최 대표의 할아버지 때부터 어선이나 운반용 철선을 만들던 조선소였다. 조선소 건물을 포함한 배를 만들던 공장건물들은 칠성조선소 뮤지엄으로 변신했고, 가족이 살던 집은 카페-칠성조선소 살롱으로, 제재소가 있던 공터는 놀이조형물 플레이스케입(Playscape)으로, 탁 트인 야외공간은 주민과 방문객이 즐길 수 있는 5개의 문화공간이 되었다. 최윤성 대표가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시작한 2014년부터 수상레저 시장은 어려워졌고, 2106년 무렵에는 소형 조선업까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만들던 카누 카약이 거의 팔리지 않아 칠성조선소는 지금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이제 배를 만드는 기술은 체험 및 투어프로그램으로 운용되고 있다. 처음부터 복합문화공간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소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수익을 내기 위해 커피숍을 만들었다. 카페 매출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커피와 디저트 중심으로 운영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정통 화덕 피자도 만들 계획이다. 최 대표는 어릴적 이곳을 놀이터로 삼았는데 그 기억과 경험을 살려서 플레이스케입을 만들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지만 이름은 여전히 칠성조선소라고 부른다. 평상시 손님은 대부분 관광객이다. 야외공간은 공연이나 페스티벌 등 문화행사에 쓰인다. 사람들이 와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준비중이다. 칠성조선소라는 원래 업종에 맞게 서핑이나 다이빙 장비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다이빙과 서핑은 이제 국내에서도 매니아층이 형성돼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요즘엔 우드서핑 보드를 만드는 수업을 준비중이다. 서핑용 수트는 주로 네오프랜으로 만드는데 요즘은 국내에서, 특히 인근 양양쪽에서 많이들 만들고 있다고 한다. 최 대표는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우리 사회 또한 로컬로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는 서양 문화를 선호해 왔지만 언젠가는 로컬 콘텐츠가 흥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요즘 속초에도 젊은 층들이 많이 이사를 오고 있는데 서핑을 좋아해서 온 사람들로 양양이 포화가 되니까 고성과 속초로 오고있다는 것. 최근 동해안을 중심으로 이같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활성화되는 양상이다. 최 대표는 서핑과 다이빙을 비교할 때 다이빙이 규모는 크지만 라이프스타일로 까지 발전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다이빙이 취미 정도라면 서핑은 빌리지가 생기고 이를 뒷받침하는 의식주까지 따라붙는 양상이다. 서핑이 아무래도 젊은층들에게 더 패셔너블하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속초시내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극동연합’을 만들어 칠성조선소 주변 속초시 중심가의 탈바꿈을 꿈꾸고 있다. 이와관련 속초 산업의 중심이었던 상징적 건물 속초수협 건물의 재생이 핵심 이슈다. 50년 된 속초수협이 이사를 가면서 철거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었지만 지금은 허물지 않고 재생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칠성조선소는 앵커시설로 한 축이 되어 속초도심 재생의 시작지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극동연합 멤버들이 각각의 ‘핫 플레이스’를 만들어 동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홍대 주변도 처음에는 클럽, 음식점 위주였지만 지금은 많은 산업들이 들어와 있다.칠성조선소의 장기적인 계획은 레저보트 또는 피크닉보트를 만드는 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은 보트시장이 작고 중국제품에 밀리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조 브랜드를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트제조 학교를 만드는 자본을 모으기 위해 칠성조선소 브랜드를 기반으로 모자 머그컵 연필 등 굿즈를 제작하고 있다. 


    여기까지 한 인터넷 뉴스의 기사를 참고했다.

    그리고 또 다른 뉴스.


    강원도 속초 청초호에는 칠성조선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1952년 북에서 내려온 배 목수 고 최철봉씨가 청초호 일부를 메워 만든 조선소인데요, 이후 2017년까지 65년 동안 3대에 걸쳐 운영되었습니다. 처음 최철봉씨는 한국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속초에 자리를 잡았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원산조선소란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과거 칠성조선소는 매우 번창했다고 합니다. 속초가 수산업이 발달한만큼 조선업이 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칠성조선소는 위기를 맞습니다. 어획량이 급감하고, 철선과 플라스틱 배가 등장하면서 목선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거죠. 이에 칠성조선소는 목선과 함께 철선을 제작하고, 배를 수리하면서 조선소를 유지했지만 결국 2017년 8월을 끝으로 조선소를 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칠성조선소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3대째 조선소를 운영한 최윤성씨가 칠성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바꿔 2018년에 새롭게 개장한 겁니다. 과거 목수들과 기계, 전자 장비 전문가들이 모여 배를 만들고, 수리하고, 해체하던 공간이 박물관으로 거듭났고, 나무를 제련하던 야외 공간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변신했습니다. 또한 가족들이 살던 공간은 카페 '칠성조선소 살롱'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1946년에 건립된 건물 안에 배를 만들 때 사용한 공구들과 옛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 공간에는 배를 물가로 옮기던 레일이 그대로 남아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칠성조선소는 바다로 통하는 청초호에 접해 있어 전망이 좋다. 카페는 2층 규모로 한가한 낮 시간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며 구입도 가능하다. 2층은 3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청초호와 설악대교, 속초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전면 유리창 앞자리는 거의 VIP급으로 눈치와 행동이 재빨라야 앉을 수 있다. 

     

    이번에 또 다른 뉴스.


    칠성조선소는 속초 청초호를 끼고 있다. 청초호 주변의 분위기는 독특하다. 쇠락한 주택과 새로 지은 모텔, 짓다 만 폐허 같은 건물들이 온통 뒤섞여 있다. 이런 골목 한쪽에 칠성조선소 살롱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낡은 조선소 건물이 있고, 마당에는 바다에서 배를 끌어내거나 진수시키는 데 쓰이는 레일이 있다. 레일 주변에는 배를 묶는 데 쓰이는 쇠사슬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커피를 파는 카페인 칠성조선소 살롱은 조선소 마당 옆에 있던 살림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내부는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는 노출 콘크리트 구조. 시멘트벽은 그대로 두고 바다가 보이는 창문만 크게 냈다.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꾸밈새만으로 보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조선소가 끼고 있는 청초호의 경관도 뭐 별로 대단하지 않다. 초록 이끼의 호수는 깨끗하다 할 수 없고, 호수 너머로는 고층아파트가 마주 보인다. 잔돌들이 깔린 마당도 황량하고, 조선소 한쪽의 조립식 건물도 생뚱맞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끊임없이 칠성조선소 살롱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열에 여덟, 아홉은 속초로 여행 온 관광객이었다. 평일임에도 손님들이 어찌나 많이 밀려들던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하루 손님이 700명이 넘은 적도 있다고 했다. 한 번 다녀간 이들의 입소문이 퍼져가면서 손님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칠성조선소 살롱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마치 강력한 인화성 물질에다 불 켠 성냥을 던진 것처럼 그 불길이 걷잡을 수 없다. 그나저나 사람들은 왜 이곳까지 올까. 무엇이 손님들을 조선소로 이끄는 것일까. 조선소가 가진 독특한 매력? 한 집안이 가업으로 이어온 것들에 대한 존중? 아니면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취향? 카페 주인조차 “도대체 관광객이 왜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짐작하건대 사람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건 아마도 칠성조선소가 지닌 진정성 때문은 아닐까. 6·25전쟁 직후에 문을 열어 한때 영화를 누리다가 이제는 경쟁에 따라붙지 못하고 뒤처져 쇠락해가는 것들에서 느껴지는 애잔함의 정서 때문은 아닐까.
    칠성조선소는 1952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지금 카페를 운영하는 최윤성(38) 씨의 할아버지가 조선소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원산조선소’였다. 고향이 원산이었던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부산까지 피란 내려갔다가 고향과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운 속초 땅에 정착했다. 속초에는 함경도 실향민들이 속속 바닷가에 자리 잡고 어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원산과 남만주에서 배 만드는 일을 했던 할아버지가 속초에 조선소를 내자 배 주문이 밀려들었다. 배 짓는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는지 호황도 그런 호황이 없었다. 속초의 인구가 늘고, 고기잡이가 번성했던 시절의 얘기다. 조선소는 가업으로 대를 이었다. 1986년 최 씨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조선소를 물려받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까지 해서 자동차 회사에 취업했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조선소를 힘겹게 운영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배 만들기의 대를 잇기로 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안팎의 사정으로 조선소는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양식업이 발달하고 어업규제가 강화되면서 배의 수요는 예전 같지 않았다. 대형어선들이 득세하면서 칠성조선소가 주로 짓던 소형 선박이 설 자리도 사라졌다. 나무로 배를 짓던 칠성조선소에 가장 큰 타격은 섬유강화플라스틱(FRP) 선박의 등장이었다. 무겁고 불편한 목선을 주문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급기야 칠성조선소는 배 짓는 것을 포기하고 선박 수리공장으로 명맥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업의 쇠락을 경험한 아버지는 아들 최 씨에게 조선소를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고교 시절 밴드 활동을 했고,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한 아들도 배 만들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최 씨는 우연히 배를 주제로 한 미술작품을 만들면서 비로소 조선소에서 자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고, 급기야 미국의 랜딩스쿨에 입학해 배 만드는 법을 배웠다. ‘배 만들기’라는 3대를 이어온 가업이 숙명처럼 그를 부른 것이었다. 2013년 아내와 함께 속초로 돌아온 최 씨는 ‘와이크래프트보츠’라는 레저선박 브랜드를 만들었다. 아버지의 조선소 한구석에서 레저용 카누나 카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수입이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 레저용 선박이 한국에서 과연 시장성이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궁리 끝에 시작했던 게 칠성조선소 살롱이었다. 조선소 안의 집을 리모델링해 커피를 팔기로 한 건 조선소 공간을 관광과 결합한 매력 있는 곳으로 변신시키기 위한 첫 단추였다. 레저용 선박을 만들어 팔겠다는 생각은 일단 접었다. 대신 조선소를 가족들이 함께 찾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가족 단위 관광객을 대상으로 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보트를 탈 수 있게 해주고, 문화공연도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 됐다. 그의 꿈에 힘이 돼준 건 한국관광공사의 지원이었다. 관광공사는 칠성조선소를 전국의 관광지를 권역별로 나눠 동선으로 연결하는 ‘테마여행 10선’의 테마 관광지로 선정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관광공사의 간섭 없는 지원은 결국 오래된 조선소가 지역 명소로 등장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지난달 19, 20일 이틀 동안 칠성조선소에서 성황리에 열린 뮤직 페스티벌도 관광공사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고 다른 뉴스에서.

     

     

     

     

     

     

     

     

     

     

    속초맛집 속초카페 도시재생 칠성조선소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