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흥옥(一興屋)은 1975년 문을 연 군산 월명동의 콩나물국밥 노포다. 군산 콩나물국밥의 원조격으로 꼽히며 백년가게로도 선정된 곳이다. 2017년 12월, 이른 아침에 직접 찾아가 군산식 토렴 한 그릇을 맛본 기록을 남긴다. (사진은 모두 2017년 12월 방문 당시의 모습이다.)
1975년부터 자리를 지킨 월명동 노포

군산 월명동의 한 골목, 짙은 갈색 목재로 마감한 일흥옥의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에는 "SINCE 1975 원조", "전통 토렴식 콩나물국밥 전문"이라는 글자가 또렷했다. 일흥옥은 1975년 8월 영업을 시작한, 군산 콩나물국밥의 원조격으로 꼽히는 노포다. 월명동 일대는 일흥옥을 비롯해 '일(日)'자 돌림의 콩나물국밥집들이 모여 군산 해장 문화를 이뤄온 곳이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2017년 12월의 이른 아침이었다. 글에 실린 사진은 모두 그날의 모습으로, 이후 가게의 상태와는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새벽 4시에 문을 여는 아침 식당

입구 옆에는 방송 출연 이력을 담은 현수막과 함께 영업시간 안내가 붙어 있었다. "오전 4시 ~ 오후 3시까지". 콩나물국밥집답게 새벽부터 문을 열어 점심 무렵 장사를 마치는, 전형적인 아침 식당의 영업 방식이다. 군산 사람들에게 콩나물국밥은 전날의 술을 풀어주는 해장 음식이자 하루를 여는 아침 한 끼였다. 그 리듬에 맞춰 일흥옥도 동트기 전부터 솥에 불을 올린다. 이른 시간에 찾았는데도 이미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손님들이 있었다.
토렴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벽면 안내

자리에 앉아 벽을 보니 토렴에 대한 설명과 콩나물의 효능을 적은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안내판에 따르면 토렴은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라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 데우는 우리 전통 조리법이다. 콩나물국밥을 펄펄 끓이지 않고 토렴하면, 콩나물의 아삭함과 육수의 진한 맛을 한껏 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군산식 콩나물국밥은 전주 남문식과 마찬가지로 이 토렴 방식을 쓴다. 끓여 내는 방식과 달리, 뜨겁지 않게 적당한 온기로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가게가 토렴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가 이 안내판 한 장에 담겨 있었다.
콩나물국밥과 모주, 단출한 차림표

벽에 걸린 차림표는 단출했다. 콩나물국밥과, 군산 쌀과 보리로 빚은 모주가 전부였다. 콩나물국밥 하나로 수십 년을 이어온 단일 메뉴 전문점다운 구성이다. 그 옆으로는 벽시계와 2017년 12월 달력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이 달력이 내가 일흥옥을 찾은 시점을 그대로 말해준다. 바로 2017년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던 겨울이었다. 오래된 식당의 차림표와 달력을 함께 바라보니, 그날의 공기가 더 또렷이 떠오른다.
잘 익은 깍두기가 먼저 자리를 잡고

음식에 앞서 반찬이 차려졌다. 흰 그릇에 담긴 깍두기는 빨갛게 잘 익어 국물까지 자작했다. 콩나물국밥집의 깍두기는 단순한 곁들임이 아니다. 맑고 담백한 국물에 새콤하고 아삭한 깍두기 한 점을 곁들이면 맛의 균형이 완성된다. 군산의 콩나물국밥집들은 저마다 김치와 깍두기 담그는 법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 익은 무의 시큼함이 입맛을 깨우며, 본 메뉴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풋고추와 양념장, 단출한 반찬 구성

깍두기 옆으로 싱싱한 풋고추와 양념장이 함께 놓였다. 반찬은 화려하지 않았다. 깍두기, 풋고추, 쌈장 정도로 단출했지만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매콤한 풋고추를 양념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맑은 국밥과 또 다른 맛의 대비가 생긴다. 반찬 가짓수보다 본 메뉴에 집중하는 노포다운 상차림이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에서 오히려 콩나물국밥 한 그릇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맑은 국물 위에 올린 군산식 한 그릇

기다리던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검은 뚝배기 안에 맑은 국물이 찰랑이고, 그 위로 아삭한 콩나물과 송송 썬 파, 김가루와 고춧가루가 정갈하게 올라 있었다. 한쪽에는 막 깨뜨린 생계란이 그대로 얹혀 있었다. 펄펄 끓여 낸 것이 아니라 토렴해 적당한 온기로 내온 군산식 콩나물국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멸치와 다시마, 표고 등으로 낸 육수는 맑으면서도 깊은 맛을 품고 있었다. 먼저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고 국물부터 한 술 떠보니,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아삭한 콩나물과 토렴한 밥알의 조화

숟가락으로 국밥을 떠올리니, 아삭한 콩나물과 토렴으로 데운 밥알이 맑은 국물 속에 가득했다. 토렴식이라 밥알이 국물을 머금어 부드러우면서도, 콩나물은 본래의 아삭함을 잃지 않았다. 안내판에서 설명하던 "끓이지 않고 토렴해 콩나물의 아삭함과 육수의 진한 맛을 살린다"는 말이 그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김가루의 고소함과 파의 향, 고춧가루의 칼칼함이 맑은 국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이 차분하게 살아 있는 한 그릇이었다.
남김없이 비운 아침의 한 그릇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떠먹고 나니 뚝배기 바닥이 드러났다. 이른 아침, 맑고 따뜻한 콩나물국밥 한 그릇으로 속을 채우니 든든하게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전주식 콩나물국밥이 수란과 다양한 곁들임으로 격식을 갖춘다면, 군산식은 토렴한 국밥 한 그릇에 생계란을 올려 담백하고 단정하게 낸다. 같은 콩나물국밥이라도 지역마다 결이 다르다는 것을, 이 한 그릇으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1975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켜온 노포의 내공이 맑은 국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군산의 아침을 콩나물국밥으로 시작하고 싶다면, 토렴식 원조의 맑은 한 그릇을 기억해둘 만하다.
(전북 군산시 구영7길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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