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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5. 경기 인천 강화맛집 강화도맛집 백반맛집 - 우리옥
    HELLOMATZIP (헬로맛집) 2022. 6. 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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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인천 강화맛집 강화도맛집 백반맛집 우리옥은 강화도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다. 약 70년 전통의 강화도 백반 맛집이다. 식당도 없었고 육지와 연결해주는 강화대교도 없던 시절부터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경기 인천 강화맛집 강화도맛집 백반맛집 우리옥의 시작은 6·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화도에는 음식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강화대교도 연결되기 전이어서 육지와 단절된 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화도에 부임한 군수, 경찰서장 등은 한동안 육지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지내야 했다. 마땅히 먹을거리가 없었기에 고위 공직자들은 손맛이 좋다고 소문이 난 故 방숙자 씨의 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는 적당히 사례를 했다고 한다. 강화도 맛집 우리옥은 군수, 경찰서장, 문화원장 등이 자주 식사를 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상호도 없이 시작한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분들이 강화도를 방문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본인들의 집처럼 손님을 데려가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상호가 자연스럽게 우리옥이 되었다고 한다. 창업주 방숙자 씨가 작고한 후에는 현재 조카 방영순 씨가 맡아 30여 년 동안 우리옥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 백파 홍성유 선생은 1978년에 출간한 <한국의 맛있는 집> 에 이곳을 소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옥 도 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1998년 물난리를 겪어 수저 한 벌 건지지 못한 채 가게 앞에서 망연 자실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경기 인천 강화맛집 강화도맛집 백반맛집 우리옥은 약 5개월 동안 건물을 새로 지으며 다시 일어섰다고 한다. 2010년에는 노후된 건물을 다시 정비하고 새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오래된 노포에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아서 좋다. 세월이 녹아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좀 더 우리옥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면,

    강화도 <우리옥> 의 주인 방영순씨는,
    “내가 ‘우리옥’을 세운 건 아니고 1953년에 고모님이 세웠어. 처음엔 식당 이름도 없었고, 말하자면 무허가였겠지. 전쟁 직후라서 행정도 어수선했으니 그까짓 시장 통의 식당을 두고 등록을 하든 말든 따지지도 않았겠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주인 방영순씨에게는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고모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방숙자씨. 방영순씨가 어린 시절, 고모님은 한 집에서 같이 살았다고 합니다.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고 늘 밥을 굶기 일쑤였지만 다행히도 고모님의 음식 솜씨가 좋았다고 합니다.  
    “고모님은 당시로서는 엘리트였다. 박문여고를 졸업하고 우리 집에 사셨는데 아마도 살림이 어려우니 음식 가게를 낼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이후 고모님은 작은 ‘무허가 밥집’을 냈습니다. 인근의 관청 직원들이 주 고객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문화원장의 부인과 친한 사이여서 강화문화원 직원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등장한 표현이 바로 <우리 집>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으레 “<우리 집> 에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외진 곳의 보기 드문 밥집인데다가 음식 맛도 짭짤해서 관청 공무원들도, 군수도 모두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정식으로 영업신고를 하면서 <우리 집>은 <우리옥> 이 되었다고 합니다.  <옥> 은 일본식 표현으로 <屋> 입니다. <집>이라는 뜻입니다.  한글과 한자가 섞인, 생경스러운 이름 <우리옥>이 생긴 배경이라고 합니다. 
    “고모님은 잔정도 많고 손도 커서 시장 통의 가난한 상인들 밥도 많이 해주셨다. 푸성귀 가지고 나와서 장사하는 이들이 돈이 없으니 곧잘 굶었지. 이들한테 비지도 끓여다 주고 밥도 주곤 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고모 방숙자씨가 <우리옥> 을 운영했습니다. 약 3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주인 방영순씨는 1967년 결혼, 1979년까지 강화읍내의 자그마한 회사 경리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모 방숙자씨가 연세가 들었다. “고모님에게 가게를 물려받았냐?”고 물어보면 “물려받은 건 아니고 옆에서 일을 하다 자연스럽게 ‘우리옥’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모님에게는 슬하의 자식도 없었고 나이가 들면서 일을 하기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조카 방영순 씨 입장에서는 ‘고모님의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일을 배우고 ‘임무교대’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고모님은 원래 음식 솜씨가 뛰어난 분이어서 동네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으면 고모님에게 ‘음식 만지는 일’을 물어보러 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 고모님 곁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초반, 방영순씨는 독립적으로 ‘우리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백반 맛집 우리옥의 백반은 흰쌀밥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백반은 ‘반찬이 없는 밥상’입니다. 반찬은 우리가 ‘요리’라고 부르는 음식들입니다. 지금도 ‘우리옥’에서 내놓는 김치, 젓갈류, 나물무침 등은 정식 반찬, 요리가 아닙니다. 결국 ‘우리옥’의 밥상은 백반뿐입니다.  백반의 중심은 당연히 밥입니다.  지금의 건물을 짓기 전, 같은 장소에 허름한 한옥이 있었다고 합니다.여름철 홍수라도 나면 부엌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이곤 했다고 합니다. 멀리서 오는 손님을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물을 퍼내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밥을 했다고 합니다. 나무가 젖어서 불을 지피기 힘들면 박스를 찢어서 불을 때고 가마솥 밥을 해냈다고 합니다.손님들 중에는 1980년대 ‘우리옥의 가마솥 밥’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백반 밥상의 ‘반찬 아닌 반찬’보다 ‘밥’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모님이 ‘우리옥’을 운영한 기간보다 방영순씨가 운영한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계절 별로 채소가 달라지는 정도이지 밥상 내용이 달라질 것은 없다. 겨울철 김장김치를 기억하는 손님들이 많고, 비지찌개, 순무김치, 조개젓갈, 콩나물국이나 미역국, 두부조림 등, 손님마다 기억하는 음식이 다르다. 고모님이 부엌에서 일하던 시절이나 1980년대 내가 맡아서 했던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늘 그 정도 맛의 비슷한 음식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 밥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의 ‘우리 집 밥’이나 ‘우리옥’의 밥은 같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음식 만드는 정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작은 종지에 나오는 꽁치조림 한 조각도 마찬가지다. 무와 생물 꽁치를 넣고 한 시간 이상 졸인다. 생물꽁치조림에서 조미된 깡통꽁치조림의 맛을 느낀다는 이들도 많다. 여전히 방영순씨의 남편은 인근의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가게에서 사용하는 식재료 중 상당수는 직접 재배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생선이나 젓갈류를 제외하고 채소류와 마늘, 고추까지 모두 인근의 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황광해 칼럼리스트님의 글을 참고했다.

     

     

     

     

     

     

     

     

     

    경기 인천 강화맛집 강화도맛집 백반맛집 우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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