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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시 미술관 4 국립 민속 박물관 서울 / korea SEOUL gallery Museum 4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마늘로드전시,갤러리 2022. 11. 16. 07:32728x90반응형
한국 전시 미술관 국립 민속 박물관 서울 korea SEOUL gallery Museum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속 자료를 연구,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생활사 박물관이다. 1945년 11월 8일 한국 민속학의 선구자인 송석하의 수장품을 기증받아 서울시 중구 예장동에 개관한 국립 민족 박물관이 그 시초이다. 6·25 전쟁으로 동관이 폐관된 후 문화재관리국은 1966년경복궁 수정전에 소규모의 한국 민속관을 개설하였다. 하지만 규모가 협소해 광범위한 전시가 곤란하던 중 1973년 6월 경복궁 내의 현대 미술관이 덕수궁으로 이전하게 되어 그 건물을 인수, 공사를 시작해 마침내 1975년 4월 11일에 국립민속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그 후 1993년 2월 17일 총면적 1만 4716.2㎡의 현재의 건물로 이전하였다.
총 3개의 상설 전시관 중 제1전시관에서는 선사시대의 생활도구에서부터 청동기시대, 삼국시대의 생활과 문화, 고려의 인쇄, 청자문화 및 조선의 과학기술, 한글창제에 대한 자료를 복원,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관에선 생활민속, 생업, 수공예, 의식주 생활등을 살펴 볼 수 있으며, 제3전시관은 출생과 죽음, 교육, 관례, 혼례, 민간신앙, 상례, 제례 등 한국인의 일생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 외에 사계절 텃밭, 원두막, 디딜방아, 돌하르방 등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고, 기획 전시관은 연도별로 테마를 선정, 연 3~4회 기획 전시를 열고 있다. 또한 유물 전시와 병행해 각종 사회 교육 활동을 통하여 한국의 민속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서울시 경복궁 내에 위치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국립민속박물관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國立民俗博物館]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전시관)
연건평 3781.8㎡. 소장유물(所藏遺物) 7,089점(1990.3.31. 현재). 조직은 전시과·관리과로 되어 있다. 연혁을 보면, 8·15광복과 함께 송석하(宋錫夏)의 노력으로 개관되었던 남산민족박물관이 1950년 국립박물관으로 흡수된 후, 16년 만인 1966년 10월 4일 문화재관리국(文化財管理局)에서 경복궁 수정전(修政殿:303.6㎡)에 1600여 점의 민속자료를 수집하여 임시 기구로 민속박물관의 개관을 보았다.
1975년 4월 11일 경복궁 내 전 현대미술관 건물을 수리하여 문화재관리국 산하의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발족 개관하였으며, 1979년 4월 13일 국립박물관 소속으로 직제가 개정되었다. 1982년 옛 중앙박물관 건물로 이전하고, 1992년 시설공사를 벌여 지하 1층, 지상 3층에 옥탑층을 갖춘 건물로 단장하였다.
지하 1층에는 수장고(收藏庫), 지상 1층에는 중앙 홀과 3개의 상설전시장 및 강당, 2층에는 행정실, 3층에는 열람실을 마련하였다. 1995년 12월 말 현재 1만 6000여 점이 유물이 역사실·생활1실·생활2실에 나누어 전시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립민속박물관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國立民俗博物館]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한국 전시 미술관 국립 민속 박물관 서울 korea SEOUL gallery Museum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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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시 미술관 국립 민속 박물관 서울 korea SEOUL gallery Museum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한국 전시 미술관 국립 민속 박물관 서울 korea SEOUL gallery Museum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은 고유한 민속 자료의 수집·보존·전시와 이와 연관된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 박물관이다. 본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세종로) 경복궁 경내에, 파주관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 30 (법흥리)에 각각 두며, 휴관일은 국립박물관 관람 규칙에 따라 1월 1일, 설 당일, 추석 당일이다. 본관 안에는 어린이박물관을 산하에 두고 있다. 한국 전시 미술관 국립 민속 박물관 서울 korea SEOUL gallery Museum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박물관의 역사는 1924년 일본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창립된 조선민족미술관이 모태다. 그러나 실질적인 박물관의 시작 연도는 1946년으로 미군정 시대에 개관한 국립민족박물관으로 본다. 그 후 1950년 국립민족박물관은 국립박물관에 흡수 통합되어 남산분관이 됐지만 1966년에 한국민속관으로 분리되었는데, 당시에는 독립된 직제나 조직이 없어서 문화재관리국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장주근 상근전문위원이 실질적 운영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명칭 변경 후 197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속으로 개편되면서 현 명칭이 됐다.변천사만큼이나 본 박물관은 그 위상이 바뀔 때마다 박물관의 위치와 사용하는 건물도 계속 바뀌었다. 본 박물관은 1946년 개관 당시에는 남산 구 시정기념관(통감 관저), 1966년부터 1975년까지 수정전, 1975~1992년까지 경복궁 향원정 뒷편 구 국립현대미술관 건물(1998년 철거)을 사용해 오다가 1993년 2월 구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선원전 터)에 자리잡았다. 1999년에는 유물과학과, 2000년 섭외교육과를 각각 신설했고, 2003년 어린이박물관을 개설하여 2009년엔 제2차 소속기관 '국립어린이박물관'으로 개편했으나, 2010년 폐지 후 어린이박물관과로 또 개편했다. 2021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에 분관을 열었다. 이처럼 국립중앙박물관(현재 용산구 이촌동 소재)이 썼던 건물이지만, 1992년 10월 소관업무가 국중박에서 문화부 제1차 소속으로 개편되면서 이듬해부터 사용하게 되었다.[2] 경복궁 동편에 있고, 입구도 동쪽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맞은편 궁궐 벽을 뚫고 나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서남쪽에 있는 경복궁역 앞 구 중앙청 후생관에 위치해 있으므로 착각하지 않도록 한다. 현 건물도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에 따라 2030년대에 철거되고 박물관은 추후 입지 선정 후 이전할 예정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외관만 보면 유구한 전통을 자랑할 것 같지만, 사실 이 건축물은 전통적·역사적 뿌리, 조화를 모두 해친다. 때문에 아래 사유로 서술했듯이 여러 가지 복잡한 까닭으로 이 건물은 2030년까지 철거하기로 결정하였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훼손한 경복궁의 건축물들이 순차적으로 복원되고 있는데, 이전에 여기에 자리했던 경복궁 선원전이 2030년 이후에 복원될 예정이므로 2031년 이전에는 무조건 이전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경복궁 선원전 외 부수 건물들의 본 터
이 박물관 터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들을 모신 건물인 선원전, 그리고 경안당, 정훈당, 대향당 등 9동 106칸의 여러 부수적인 전각들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은 6.25 전쟁 속에서도 다행히 살아남았는데, 어이없게도 이 수많은 전각들은 박물관 공사를 이유로 대한민국의 손에 철거되고 말았다.
1990년 기준 경복궁에 남아있던 전각이 36동이었으므로, 그나마 남아 있던 전각의 20%가 어처구니 없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즉 일제가 아닌 대한민국에 의해 훼손된 우리 문화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선원전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장충단에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모신 절인 박문사로 팔려나갔지만 유구만은 제자리에 온전히 남아있었는데, 박물관을 짓는 과정에서 유구가 훼손되는 바람에 현재로서는 선원전의 정확한 구조와 위치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어졌다.
조선 왕조의 유교 이념과의 부조화
조선 왕조는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았으므로, 궁궐에 불교식 건축은 커녕, 승려가 사대문 안에 들어가는 것도 금지되었다. 일부 왕실 인사가 개인적으로 불교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승려가 출입한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사항이었다. 그런데도 조선의 정궁 안에 불교 건축을 짬뽕해 놓은 혼합형 건축물이 턱하니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는 건물을 철거하고 박물관을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실제로 2001년경 문화관광부는 이전 용역 보고서를 내기도 하였다.
경복궁 부지 내 광화문 서측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도 사실 이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쪽은 복원해야 할 건축물은 없기 때문에 별다른 문젯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1966년 당시 문화재 관리국은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 적이 있다.
“건물 자체가 어떤 문화재의 외형을 모방함으로써 그 조합과 질감이 그대로 나타나게 할 것이며 여러 동이 조화된 문화재 건축을 모방해도 좋다.”
당연히 이러한 규정은 당시 건축계에서도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건축계와 문화계에서는 건축의 창의성을 무시하는 일이며 단순한 모방은 전통을 계승하기는커녕 왜곡할 수 있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 주요 건축가들은 정부의 이러한 처사를 문화적 만행이라 규탄하며 설계 공모 자체를 거부했고, 결국 응모된 10여 개의 설계안 중에 강봉진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디자인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보면 김중업 건축가가 지은 주한프랑스대사관처럼 반드시 기단 만들고 기와 올리지 않은 건물이라도 한국 전통 건축의 미를 계승할 수 있고, 그게 오히려 더 발전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속전속결을 강조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이런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하여 건물의 계단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상부의 5층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난간 위의 평면과 부속 건물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난간 아랫 부분과 건물 측면은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상륜부 난간은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에서 따온 모양이 되었다. 앞서 밝혔듯이 말이 따온 거지 사실상 짜깁기한 것이다.
꽤 규모가 큰 건축물이지만, 정작 그곳에는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 많으며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이 10%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부피만 차지하는 큰 석상이나 다름없다. 내부 전시관만 둘러볼 수 있을 뿐, 건물 기단 윗부분에 있는 넓은 외부 공간에는 관람객이 아예 출입금지되어 있다.- 나무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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