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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0. 전라 광주 여행 맛집 콩국수 맛집 - 대성콩물
    마늘의 국내 맛집탐방 2022. 9. 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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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콩물

     

     

     

     

     

     

    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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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국수
    광주 맛집

     

     

     

     

     

     

     

     



    전라 광주 여행 맛집 콩국수 맛집 대성콩물은 4~9월만 영업하는 콩국수 맛집이다. 1974년 열고 1986년 현재 위치인 계림동에 자리잡은 대성콩물은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콩물은 광주사람들이 콩국수를 부르는 말이다. 대성콩물은 중흥본점과 일곡직영점 두 곳에서만 운영된다고 한다. 콩국물의 색이 다른 곳에 비해 진하다. 주인 고영희씨의 고집으로 서리태가 들어간다고 한다. 전라 광주 여행 맛집 콩국수 맛집 대성콩물에는 백태 3분의 2와 서리태가 3분의 1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서리태는 검정콩 중에서 서리가 온 후에 수확하는 콩이다. 일반 콩보다 몇 배나 비싼 콩이다. 콩국수 맛집 대성콩물의 면은 탱탱하다. 부산식 밀면에 메밀가루가 조금 들어간 면이라고 한다. 


    잠시 콩국수의 역사에 대해 찾아보면,

    콩국수가 언제부터 서민들의 여름철 별미가 됐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기록에는 19세기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 에 나온다고 한다. [시의전서] 에 보면 발간 연대를 19세기 말이라고 했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1911년 발행본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에서는 콩을 물에 불린 후 살짝 데치고 갈아서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밀국수를 말아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콩국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는 부분이라고 한다. 양반들이 먹은 깻국은 19세기 중반 《동국세시기》에 그 모습이 보인다. 여름철 계절 음식으로 밀가루 국수를 만든 다음 거기에 오이와 닭고기를 넣어 백마자탕(白麻子湯)에 말아 먹는다고 했는데, 백마자탕이 바로 들깨를 갈아 만든 깻국이다. 깻국의 형태가 지금의 콩국수와 비슷하다고 한다. 옛 문헌에 콩국수가 보이지 않는 이유로는 콩국수가 철저하게 서민들의 음식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콩국수의 주재료인 콩국은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자주 마시던 음료였다. 다만 지금 두유(豆乳)를 마시는 것처럼 건강 음료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콩을 갈아 국물을 만들어놓고 배고플 때마다 부족한 양식 대신 수시로 콩국을 마시며 영양을 보충했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자신은 친지들과 콩 먹는 모임인 삼두회(三豆會)를 만들어서 콩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이익이 주로 먹었다는 콩 음식이 콩죽 한 사발, 콩국 한 잔에 콩나물 한 쟁반이었다. 그럴듯한 이름의 삼두회란 가난한 살림을 아름답게 묘사한 수사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다산 정약용 역시 봄철 춘궁기가 되면 곡식 뒤주 비는 일이 잦아서 콩국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낸다고 했으니 콩국수의 주재료인 콩국은 이렇게 청빈한 선비들이 절개를 지키며 먹는 음식이었고, 살림이 넉넉지 않은 서민과 농민들이 양식 대신에 마시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콩값이 쌀값의 약 두 배가 될 정도로 비싸졌기에 콩으로 만든 음식이 전혀 싸구려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옛날에는 감옥에서 콩밥을 먹였을 정도로 콩은 흔해빠진 곡식이었다. 콩국수는 콩국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옛날에 가난한 사람들이 곡식 대신에 끼니를 때우려고 마셨던 콩국에 귀한 밀가루 국수를 말아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진가루로 불린 밀가루는 역시 귀한 깻국에 말아 먹었으니 깻국에 국수 말고 오이와 닭고기를 얹은 백마자탕은 양반들의 여름철 별미였다. 반면 평민들은 평소 마시던 콩국에 메밀이나 감자로 만든 국수를 말아 여름철 별미로 삼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 요리는 양반들의 요리책에 레시피를 올릴 만한 음식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20세기가 다 되어서야 [시의전서] 에 깻국처럼 먹는다는 설명과 함께 오른 것이 아닐까라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전라 광주 여행 맛집 콩국수 맛집 대성콩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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