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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6.진주맛집 진주냉면 냉면맛집 - 하연옥
    마늘의 국내 맛집탐방 2022. 7. 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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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맛집 냉면맛집 진주냉면 하연옥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진주냉면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면,
    진주냉면은 1994년 발간된 <조선의 민속전통>이란 북한과학백과사전에 따르면 ‘냉면 가운데 제일이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고 기재돼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3대 냉면을 꼽을 때에도 함흥냉면과 평양냉면, 진주냉면을 뽑을 정도로 유명한 음식이었다고 한다.조선시대의 진주냉면은 진주 교방문화와 함께 꽃을 틔운 음식이다. 선시대 관리를 대접하던 교방청이 있던 진주에서는 원래 밀가루 면을 멸치국물을 붓고 열무김치, 달걀지단, 무 채 등을 올려먹는 ‘밀국수’가 있었다. 이것이 메밀국수로 대체돼 진주냉면이 만들어졌다. 진주의 양반들이 기생들과 술판을 벌인 뒤 입가심으로 먹던 (선주후면) 고급음식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냉면의 고명 또한 교방청 별식답게 전복, 해삼, 석이버섯 따위의 비싸고 귀한 재료가 올라갔는데 이후 냉면이 서민 음식이 되면서 소박해졌다고 한다. 현재 하연옥의 정운서 사장은 “기생들이 야식으로 먹어 예전에는 배달도 했다”고 합니다. "서민들은 비싸서 사 먹지 못하던 음식” 이라고도 이야기 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메밀국수에 볶은 고기를 가늘게 썰어 넣어 배와 생강으로 맛을 여민 육수로 된 이른바 진주냉면이 구사마의 호물이었다고 한다. '이 냉면 기가 막혀.' 구사마는 한꺼번에 두 그릇을 먹곤, '진주를 떠나면 영영 이 맛있는 냉면을 못 먹게 될 텐데….' 하고 숙연히 한숨을 지었고 한다. 이 것은 소설가 이병주의 <지리산>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본인 교사 '구사마'가 진주를 떠나면서 다시는 냉면을 못 먹게 되는 것을 한숨짓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진주냉면은 그 맛이 유명했다고 한다. <한국향토전자문화대전>에 따르면 진주냉면은 중앙시장 대화재로 1960년대 중반에 진주지역에서 사라졌다가 1999년 진주냉면 원형을 중심으로 식생활문화연구가에 의해 재현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옥봉동을 중심으로 수정식당, 평화식당, 은하식당 등 7~8개 업소가 성업 중이었으며, 옛날에는 이러한 식당들이 하인을 두고 직접 배달을 하였다 한다.

    진주맛집 냉면맛집 진주냉면 하연옥.
    본관 외에도 별관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냉면집으로 주차장도 상당히 크다. 진주냉면은 메밀가루로 면을 만든다는 것에서는 평양냉면과 비슷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채썬 육전, 실고추, 계란 지단과 오이, 배 등 색색의 고명을 얹고 마른 명태머리와 건새우, 건홍합 등으로 맛을 낸 해물육수가  더해져 눈과 입이 즐거운 별미 중의 별미라고 한다. 진주맛집 냉면맛집 진주냉면 하연옥이 만들어진 계기는 하거홍·황덕이 부부가 1945년 낸 부산식육식당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는 황씨 막내사위인 정운서(58) 사장이 냉면 기술을 전수받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전통은 깊은데 가게 이름은 자주 바뀌었다고 한다. 부산식육식당에서 부산냉면(1995년)으로 다시 진주냉면(2005년)으로 가게 이름을 바꿨고, 갑자기 전국에 진주냉면 간판을 단 식당이 많이 생기자 2011년엔 하연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연옥은 정 사장 부인, 그러니 황 할머니 막내딸 이름인 하거홍의 딸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진주맛집 냉면맛집 진주냉면 하연옥은 부산과 진주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전국에서는 본점에서 배워 나간 친척들이 이름을 조금씩 바꿔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진주 냉면 맛집 하연옥 관계자는 “지역 고유의 맛을 살릴 수 있었던 데는 70여 년 전통의 시간이 있었다. 피난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고유의 맛을 이어오고 있으며, 직영점 아니면 가맹체인점을 내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 이냉치냉이라는 말도 있다. 냉면에 관한 기록이 문헌에 보이는 19세기 중엽 무렵 <동국세시기>에는 냉면을 여름음식이 아닌 '겨울시식'으로 꼽고있다고 한다.

    진주맛집 냉면맛집 진주냉면 하연옥의 본점은 2층부터 시작이다. 이 곳의 대표는 정운서 사장이다. 그는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1945년, 장인 하거옹 사장이 차린 ‘부산식육식당'이 2015년의 ‘하연옥’으로 모습으로 거듭나는 데까지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가 진화시킨 덕택이었다. 부산식육식당’은 곰탕, 갈비탕, 수육 등 식당 이름에 걸맞게 돼지와 소에 관련한 것들을 모조리 팔았다. 사위인 그가 집안에 들어서면서 식당의 변화가 시작됐다. 본래 정 사장은 서울에서 헤어 디자이너를 했다. 강원도 횡성 출신인 그는 서울에 올라와 조수부터 시작해 열심히 꿈을 키워나갔다. 당시로써는 앞선 기술인 샤기컷도 했다. 어느 날, 명동에서 남자 디자이너가 여자 원장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 일대에서 남자 디자이너 퇴출운동이 시작됐다. 그는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한 지인은 연고도 없는 경남 진주의 한 미용실을 소개했다. 운명처럼, 그는 이곳에서 지금의 아내, 하연옥 씨를 만나게 된다. 하씨의 언니가 하는 미용실에 취업한 것이다. 29살에 하연옥 씨를 만난 그는 34살, 결혼에 골인한다. 헤어 디자이너는 그만뒀다. ‘부산식육식당’을 본격적으로 꾸리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걸 바꾸기 시작했다. 30개나 되는 메뉴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12개만 남겼다. 상호도 ‘부산냉면’(1995)으로 바꿨다. 처가의 반대가 극심했다. 굴하지 않았다. 장사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수가 냉면을 맛보고 말했다.
    “해물로 육수를 내고, 육전을 올리는 이 방식이 바로 ‘진주냉면’입니다”
    진주식 냉면인지도 모르고 팔고 있었던 그는 ‘아차’ 싶었다. 상호는 다시 ‘진주냉면’(2005)으로 바뀌었다. 또 적중했다. 서부시장에서 ‘진주냉면’은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급기야 ‘진주냉면’ 상호를 달고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광범위해진 상호 탓에 ‘진주냉면’은 상표등록을 허가받지 못했다. 2011년, 정 사장은 여기서 또 결단을 내린다.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 “진주냉면이라는 이름으로는 도저히 차별화를 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의 ‘우래옥’ 같은 이름을 생각하다 부인 이름을 따와서 ‘하연옥’이라 짓게 됐죠.” 이처럼 거침없는 정 사장의 행보는 성공에 대한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 비판에 굴하지 않는다. “연세 드신 분들께 욕 많이 먹었어요. 육수 배합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30% 정도 손님이 떨어져 나갔죠.
    대신 젊은 손님들이 그 자리를 메웠어요. 우리 가게를 보시면 40대 이하 손님들이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냉면집에 20대 젊은 손님이 많은 건 드물죠.”
    진주냉면’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진주냉면’을 계속해서 창조해냈다. 그는 “변하지 않는 전통은 퇴락하게 돼 있다”며 “궁중음식은 역사 속에 보존하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기 중 가장 앞섰던 헤어디자이너 일을 그만둘 때도, 가게 상호를 수차례 바꿀 때도, 냉면 육수 배합을 계속해서 변화를 줄 때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저는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일단 부딪혀봐서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 안 된다’하는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합니다. 일에 미치든 맛에 미치든, 미치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옛날 맛이 아니다’ ‘육수 맛이 이상해졌다’ 취재를 망설일 정도로 ‘하연옥’에 대한 악평이 넘쳤다.
    “웃고 넘기죠. 경쟁 업체에서 올리는 것도 있고,. 그런데 보세요. 맛이 없다면 하연옥에서 하루 3천 그릇씩 냉면을 팔 수 있겠어요?”
    진주맛집 냉면맛집 진주냉면 하연옥은 서울로 체인점을 내자는 문의도 숱하게 들어왔다.
    “서울에 있는 분들이 진주까지 와서 맛보고 가야, 진주의 명물로 남지 않겠어요?”
    현재 하연옥은 사천과 진주까지 합쳐 모두 3곳이 전부다. 하지만 최근에 네이버지도등을 보면 서울등에도 분점이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정 사장은,
    “해물에 있는 핵산이 감칠맛이 더하고, 이것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육전에도 해물육수가 들어가 감칠맛을 더한다. 냉면에 싸서 먹으면 더욱 맛있다. 진주냉면을 표방하는 가게들의 육전이 마지막 1%를 따라잡지 못하는 건, 바로 육수를 흉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주냉면 냉면맛집 하연옥의 육수는 소 사골·사태와 함께 멸치·새우·밴댕이·다시마·바지락 등을 넣고 푹 우려낸다. 멸치 비린내를 잡기 위해 뜨겁게 달군 무쇠를 끓는 멸치장국에 넣어 순간적으로 온도를 올려 비린내를 잡는다고 한다. 이 육수를 만드는 재료를 보관하는 저장고는 하연옥에서 조금 떨어진 경남 산청에 있다고 한다. 정 사장이 직접 지게차를 이용해 육수 재료를 옮긴다고 한다. 가을철, 배 수확 때는 배 500상자가 저장고 벽면을 가득 채운다고 한다. 냉면의 또 다른 재료 중 하나인 면발 역시 부단히 개발했다고 한다. 0℃의 저장고에는 건새우, 붉은 새우, 황태머리, 디포리, 멸치, 바지락, 다시마 등 재료들이 있다고 한다. 이 재료들을 큰 통에 넣어 2박 3일 동안 끓이고 15일간 저온 숙성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전엔 넣었던 홍합과 문어는 빼고 배합을 달리한다고 한다. 온면 육수 역시 해물재료는 똑같이 들어가지만, 배합이 다소 다르다고 한다. 염도가 얕아 냉면 육수와는 달리 -7℃ 저장고에 보관한다고 한다. 이 모든 배합의 비밀은 정 사장 혼자만 알고 있다고 한다. 하연옥의 비밀은 하연옥 씨도 모른다고 한다. 이를 알려달라며 3년을 쫓아다닌 사람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달궈진 쇠막대기를 이용해 육수의 잡내를 없애는 방식은 지금에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때 유명했던 이 방식 대신, 육수를 숙성시키는 등의 방법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주맛집 냉면맛집 진주냉면 하연옥의 면은 메밀과 감자전분을 7대 3 비율로 섞어 만든다고 한다. 현재는 제주 메밀과 고구마전분을 적절히 배합한 뒤 밀가루를 섞는 4:4:2 비율로 만든다고 한다. 예전에는 산청에 나는 장밀을 썼으나, 그 장밀집이 지금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많은 손님을 받는 것보다 한 분을 정성껏 모셔야 한다는 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진주냉면의 철학이다. 원조 냉면 맛집의 이름을 100년까지 지켜나갈 것!

    진주맛집 냉면맛집 진주냉면 하연옥은 허영만 화백님의 식객과 냉면열전등 많은 책에서도 언급이 된 냉면맛집이다. 하연옥의 1년 방문객 숫자는 자그마치 100만 명이라고 한다. 성수기 하루 평균 방문자 숫자는 1만 명, 그중에 하연옥 냉면을 먹고 가는 손님은 3천 명이라고 한다. 기다리다 지쳐 돌아가는 손님만 6~7천 명이라고 한다.


     

     

     



    "자식들이 물려받으면 좋고, 안 받으면 조카라도 줘야죠. 일본은 미꾸라지 요리로 400년을 가고, 두부를 가지고 700년을 가는데 우리나라는 100년을 넘어가는 식당이 없어요. 동경대를 나와서 문방구를 물려받는 일본을 보세요. 사회적 신분보다 가업을 물려받는 자부심 같은 게 우리나라도 필요하죠."






    * 다른 곳에서 찾아본 진주냉면의 역사

    예부터 ‘북 평양기생, 남 진주기생’이라 했다. 일제강점기 때 기생을 관장하는 조합인 권번(券番)이 진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냉면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조리연구가 고 이성우 교수가 쓴 <한국의 조리문화사>에는 ‘평양냉면에 견줄 만한 진주냉면은 남국적인 맛으로 유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주냉면은 1800년 말, 진주목(晉州牧)에서 나온 숙수(熟手, 조리사) 한 명이 옥봉동 개울가에서 만들어 팔던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진주냉면은 권번가에서 야식으로 즐겨 먹던 고급요리였다. 당시 옥봉동은 기생이 많이 살던 지역이었다. 기생들은 야심한 밤에 냉면집을 찾아 냉면을 밤참으로 먹었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옥봉동을 중심으로 수영식당, 평화식당, 은하냉면 등 7, 8개 업소가 성업했으며, 냉면집에는 배달부만 서너 명씩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1966년, 진주시내 중앙공설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며 냉면 가게도 모두 불타 진주냉면의 맥이 끊어졌다

    그러다 1999년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씨에 의해 진주냉면이 복원되었다. 김씨는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에서 ‘냉면 중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는 기록을 발견하고 진주냉면을 찾아 나섰다.  

    김영복씨는 과거 진주냉면 가게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 각자 진주냉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후 공통점을 정리해 사라진 진주냉면을 재현해 냈다. 현재 이 재현된 진주냉면을 맛 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 ‘하연옥’이다.  

    하연옥은 하거홍·황덕이 부부가 1945년 낸 ‘부산식육식당’이 원조다. 하거홍 사장은 진주 중앙시장에서 진주냉면 식당을 전전하며 냉면 만드는 기술을 배워 서부시장에 가게를 열었다. 그 덕분에 중앙시장에서 불이 났지만 서부시장에 있었던 부산식육식당은 진주냉면의 맛을 이을 수 있었다.  

    2005년, 김영복씨는 황덕이씨와 함께 진주냉면을 재현해 상품화했다. 진주시에서는 가게에 ‘진주냉면’이라는 간판을 쓰게 했고, 이후 2011년 ‘하연옥’이란 이름으로 바꿨다. 하연옥은 하거홍 사장의 딸 이름이다.  

    사실 이 진주냉면이 제대로 복원된 진주냉면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2000년 초반, 지역 특산물 만들기에 공을 들였던 진주 공무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향토 음식’이라는 것이다. 진주냉면이 몇몇 노인들의 기억에만 의존해 짜맞추기식으로 재현되었다는 논란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진주냉면은 분명 한 번쯤 먹어볼 만한 ‘맛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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