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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1.춘천맛집 커피맛집 - 이디오피아집
    마늘의 국내 맛집탐방 2022. 4. 2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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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맛집 춘천카페 커피맛집 이디오피아집은 Since 1968 년, 이디오피아 황제로부터 직접 원두를 받은 대한민국 최초의 원두커피점이다. 이디오피아 박물관과 붙어 있고, 그 지하에는 더 클래식 이디오피아 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이 곳의 대표는 조수경대표로 이 곳 이디오피아집은 춘천 공지천과 의암호 부근 이디오피아길에는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기념관’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참전기념비 근처에 있다. 이곳은 2004년 춘천시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시가 자매결연으로 교류를 넓히며 참전기념비와 이디오피아집(Bet)을 인용해 도로명도 부여했다. 이 길에서 '세계 커피축제'를 열기도 했다. '이디오피아집(Bet)'은 1968년부터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단 하루도 휴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반지하를 포함한 카페 3층 건물 외부에는 이디오피아 원주민 그림과 이디오피아 황제의 상징인 '황금 사자' 문양이 걸려있다. 카페 입구에는 하일레 슬라세(Haile Selassie) 1세 이디오피아 황제 사진이 있다. 그리고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커피 향이 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개관 일자가 적힌 푯말도 볼 수 있다. 카페 안은 이디오피아의 분위기를 느끼도록 여러 조각상과 소품들, 이디오피아 황제와 대통령, 참전용사들의 방한 기념사진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특히 물라투 테쇼 대통령 내외가 앉았던 의자와 테이블은 당시 그대로 보존돼 있다. 가구와 소파 등 내부 전체는 우드 소재로 올드하면서도 따스한 브라운 톤이고 공지천 쪽 벽면은 통유리로 단장돼 조망이 확 트여 있다. 반 지하에는 듣던 대로 황제의 안전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었고, 한쪽 켠 유리벽 너머로 투박해 보이는 이디오피아집(Bet) 커피 맛 비결을 품은 보물 로스팅 기계가 놓여 있다. 이디오피아집(Bet)이 처음 문을 연 이래 단 하루도 휴업을 하지 않은 이유는 故조용이·김옥희 여사(이디오피아집 조수경 대표의 부모)와 하일레 슬라세 1세 황제와의 약속 때문이라고 한다. 하일레 슬라세 황제와 조용이·김옥희 부부의 인연이 시작되고 '이디오피아집(Bet)' 탄생의 배경 사연은,


    경북 안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조용이·김옥희 부부는 이디오피아 황제가 전용기를 타고 방한했다는 소식을 듣고 춘천까지 구경하러 왔다고 한다. 하일레 슬라세 황제는 현재 위치(이디오피아집)에 텐트를 치고 앉아 참전기념비를 바라보며 매우 흐뭇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언젠가 다시 한국에 올 것을 약속하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황제의 쉼터이자, 이디오피아 문화를 알리는 공간으로 ‘이디오피아 문화원’ 건립을 희망했다고 한다. 이런 황제의 요청이 알려져 우여곡절 끝에 조용이·김옥희 부부가 자비를 들여 지금의 이디오피아집을 짓게 된 것이라고. 특히, 혹시라도 일어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반지하 형태의 요새처럼 튼튼하게 설계했다고 한다. 1968년 11월 25일 처음 문 열 당시에는 문화원 명목의 이디오피아 원두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하일레 슬라세 황제는 개관을 축하하며 즐겨 마시던 이디오피아 황실 커피 생두(green bean)를 외교행랑을 이용, 일본 대사관과 한국 외교부를 통해 보내왔다. 'Bet'은 하일레 슬라세 황제가 직접 지어 준 이름으로 이디오피아어로 '집'을 의미한다. 황제는 이디오피아 황제의 상징인 ‘황금 사자’ 문양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황제는 조용이·김옥희 부부에게 "이곳에서 하루도 커피 향이 나지 않는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조용이·김옥희 부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100년이고, 200년이 흘러도 커피 향이 안 나는 날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황제와 약속했다. 하일레 슬라세 황제와의 약속을 대를 이어가며 51년 동안 지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생판 모르는 나라가 전쟁에 처한 상황을 보고 기꺼이 돕겠다며 그것도 황실 근위병의 목숨을 바쳤다는 점이다. 조수경 대표에 따르면, 하일레 슬라세 황제는 한국전쟁 파병 결정을 하고 자식 같은 황실 근위병들에게 "가거라! 멀쩡한 몸으로 돌아오지 마라. 몸이 성해서 돌아오면 너희들을 용서치 않으리라. 그들에게 자유를 안겨주고 오너라."라고 명령했다. 6.25 전쟁 당시 이디오피아 '강뉴(kagnew)' 부대원들은 춘천 일대 중동부전선에서 총 253회 전투에 참가했다.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던 유일한 부대로 알려졌다. 그들은 휴전 후 1965년 3월 철군 때까지는 자신들의 월급을 모아 서울에서 전쟁 고아들을 돌보며 전후(戰後) 한국의 재건을 도왔다.조 대표는 "부모님께서 그들이 목숨 걸고 와서 싸워줬는데 우리는 신의(信義)를 생각하자고 말씀하셨다"면서 "어머님과 아버님이 사표 내시고 춘천으로 오셔서 이디오피아집을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수경 대표는 "어머니가 영어와 일어를 잘하셨어요. 부모님께서 일본 대사관에 오가시고 이디오피아 사람들도 오고 해서 로스팅하는 걸 배워 시작했다"며 이디오피아집 개관 당시 상황을 전했다. 조 대표에 따르면, 어머니 김옥희 여사는 이디오피아로부터 생두 로스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다. 특히 교육자 출신인 김 여사는 생두를 비닐에 싸서 직접 전국을 돌며 "6.25 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이디오피아에서 생산한 커피 원료 생두"라면서 각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공짜로 줬다고 한다. 그 후 전국 곳곳에서 대학생과 일반인들이 경춘선 열차를 타고 이디오피아집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즐기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70~80년대는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이디오피아집(Bet)에서 미팅이나 맞선을 보면 사랑이 이뤄져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도 있었다고 한다. 1991년 '크리스마스이브' 때는 이디오피아 커피만 무려 1260잔을 판 전설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원두커피를 알리고 확산시킨 계기가 국가 간 신의와 약속을 중요시한 김 여사의 열정적인 커피 사랑이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이래서 나온 듯하다. 지금은 조 대표의 아들·딸·사위가 하일레 슬라세 황제와의 약속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로스트 커피 향을 내며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조 대표는 "제가 79학번인데 지금도 제 나이 때와 저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아직도 많이 찾아오신다"고 말했다. "황제와의 약속을 수십년 년 동안 지켜오느라 단 하루도 문 닫은 적이 없어서 카페 수리가 필요한 데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저는 염색도 못하고 화장도 못하고 향수도 못 뿌려요. 그래야만 제대로 된 맛과 향을 내는 커피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 황제의 시녀들이 황제에게 커피를 바치기 위해 일일이 다 골라내고 로스팅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생두 1kg이면 200g은 골라낸다”고 했다. 커피는 야생 원두라서 깨끗이 씻어 말린 뒤, 구멍 난 거나 곰팡이 쓴 거, 모양이 못난 거 등 불량 콩은 골라내고 3일간 숙성을 통해 탄산 가스를 빼야만 고유의 제 맛을 내는 커피가 나온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조 대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맞춰서 맛을 내는 데 있어서 100잔의 커피든 손님이 100번을 찾아왔을 때든 그 맛은 똑같아야 한다."면서 "그 비결은 반세기 동안 지켜온 황제와의 약속과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께서 모두 한 번씩은 다녀가셨는데 문재인 대통령님이 대선 후보 당시 오셨을 때 한 수행원이 일정을 이유로 커피를 일찍 줄 수 있느냐며 부탁해 왔지만, 주문이 밀려 순서대로 내야 한다"며 정중히 거절했던 사연도 들려줬다. 결국 문재인 후보는 순서를 기다려 커피를 마시고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조수경 대표와 그의 남편 David Cha(차 다비드) 씨는 이디오피아 명예 대사다. 두 사람은 이디오피아인들이 한국에 와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곤경에 처하는 등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을 돕고 좋은 일에도 함께 한다고 했다. 매년 10월 초면 이디오피아의 설날을 맞는다. 이디오피아 달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날짜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 때는 이디오피아 대통령도 와서 자국인들을 모아놓고 축제 행사까지 연다고 한다.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행사를 열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이디오피아의 1년은 13개월이다. 당연히 시간도 다르다고 한다. 하루 24시간의 시작은 오후 6시다. 우리나라의 오전 6시가 이디오피아 시간으로는 오후 12시(정오)다. 이디오피아 대사를 비롯해 직원들과 영사 등이 한국으로 발령받아 오면 청와대와 외교부 방문에 앞서 맨 먼저 이디오피아 참전기념비에 참배한 뒤 바로 이곳 '이디오피아집(Bet)'을 찾는다. 메레스 제나위 수상(1992~현재)이 방문했고, 지금도 이디오피아 참전용사들이 매년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앞서 한국-이디오피아 수교 50주년(1963~2013)을 맞아 이디오피아 외무장관 수행 하에 130여 명의 사절단과 50여 명의 교민이 참여하는 기념행사를 '이디오피아집(Bet)'에서 개최한 바 있다. 이어 이디오피아 물라투 테쇼 대통령 내외가 2015년 이디오피아집(Bet)을 방문했다. 이처럼 그들은 하일레 슬라세 황제가 머물렀던 이곳을 이디오피아 '성지(聖地)'로 여긴다. 조 대표는 "하일레 슬라세 황제는 솔로몬과 시바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황제에 대한 존경심이 높고, 이디오피아 커피에 대한 자존심과 자존감도 강하다"고 말했다. 또 "모국의 커피 맛을 즐기러 오는 이디오피아인을 비롯해 때론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디오피아인들이 찾아와 향수를 달래며 울기도 한다."고 전했다. 다리 건설로 참전기념비를 옮겼을 당시 사연도 들려줬다. 당시 이디오피아 대통령은 조 대표에게 "한국인이 생각하는 대통령과 우리가 생각하는 황제는 틀리다"면서 섭섭함을 표했다고 한다. 이어 "황제가 참배했던 기념비를 옮겨가면서 단 한마디 상의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았으며, 기념비가 있었던 자리를 왜 그냥 비워두느냐,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거냐?라는 이디오피아 대통령의 물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너무 창피했다"며 회고했다. 조 대표 부부는 "참전기념비가 있었던 장소에 하일레 슬라세 황제 동상 또는 흉상을 건립하려고 현재 춘천시에 협조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조 대표 부부의 이디오피아 지원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계속됐다. 사비를 들여 손 소독제와 마스크를 구매해 이디오피아로 보낸다고 한다. 조 대표는 "현재 이디오피아 현지 국가 재정 등의 어려움으로 우리나라에는 대사관을 파견하지 못하고 영사관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서 그냥 있을 수 없다"면서 "어떻게든 조금씩 돈을 모아 한국에 이디오피아 대사관이 자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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