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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전시 미술관 4 도쿄 미술관 전시 3. / japan gallery Museum 2 . tokyo garllery 3. - 와타리움 미술관 ワタリウム美術館
    마늘로드전시,갤러리 2023. 1. 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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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전시 미술관 도쿄 미술관 전시 japan gallery Museum tokyo garllery 와타리움 미술관 ワタリウム美術館

     

     

     

     

     

     

     

     

     

     

     

    일본 전시 미술관 도쿄 미술관 전시 japan gallery Museum tokyo garllery 와타리움 미술관 ワタリウム美術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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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전시 미술관 도쿄 미술관 전시 japan gallery Museum tokyo garllery 와타리움 미술관 ワタリウム美術館
    일본 전시 미술관 도쿄 미술관 전시 japan gallery Museum tokyo garllery 와타리움 미술관 ワタリウム美術館

     

     

     

     

     

     

     

     

     

     

    일본 전시 미술관 도쿄 미술관 전시 japan gallery Museum tokyo garllery 와타리움 미술관 ワタリウム美術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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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전시 미술관 도쿄 미술관 전시 japan gallery Museum tokyo garllery 와타리움 미술관 ワタリウム美術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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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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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전시 미술관 도쿄 미술관 전시 japan gallery Museum tokyo garllery 와타리움 미술관 ワタリウム美術館

     

     

     

     

     

     

     

     

     

    데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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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타리움 미술관(ワタリウム美術館)은 일본 시부야 구에 있는 미술관이다. 1990년 9월에 오픈하였다.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 있으며, 현대 미술의 작품을 중심으로 건축, 사진, 영상 미디어와 디자인 전람회를 기획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예술가의 대형 회고전 전시회 요셉 보이스 , 래리 클라크 , 헨리 다저 , 얀 파브르 , 페데리코 헤레로 , 마이크 켈리 , 존 루리 , 배리 맥기 , 백남준 , 게르다 슈타이너 & 요 르그 Lenzlinger는 지난 몇 년동안 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큰 전시회도 있지만 어린이를위한 강습회, 학습 워크샵 및 소규모 프로젝트 룸 전시회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기존 예술가와 신흥 예술가 모두에게 균형 잡힌 관심을 보이는 곳이다. 내가 이 곳을 찾았을 때는 10주년 기념 백남준 작가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 나무위키에 있는 백남준 작가의 소개글을 가져와보면,

     

     



    백남준은 대한민국 출신의 미국 국적 예술가.

    백남준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파격적인 예술적 세계관으로 매우 유명하며, 지금은 볼프 포스텔과 더불어 비디오 아트의 세계를 개척한 누구도 부정 못할 세계적인 예술가이지만, 비디오 아트 이전 시절에는 전위예술 퍼포먼스 아티스트였다.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으며, 플렉서스 멤버로 퍼포먼스 예술에서도 한 축을 담당했다.

    백남준은 조선 직물업계의 큰 손이자 친일파인 백낙승의 아들로 태어났고, 덕분에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집에는 피아노나 전축은 물론 당시에 서울에 딱 2대 밖에 없었던 캐딜락도 있었고, 광복 전에 유치원(애국유치원)에 다녔으며 한국 전쟁의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파인애플을 먹을 정도의 부잣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돈은 물 쓰듯 쓰는 거다'라고 했다고 한다.[6] 그의 조부 백윤수 또한 청나라 비단을 독점 판매했던 거부로, 종로5가와 동대문시장 일대의 포목상 절반이 그의 것이었고, 국상 때 만조백관의 상복과 제복을 일체 도맡았을 정도로 섬유업계의 막강한 실력자였다. 후에 그는 직물, 대부업, 제약회사 등을 세웠고, 재산은 한성은행 자본금의 3배에 달했다.

    백남준은 당시 상류층만 다니던 수송국민학교와 경기공립중학교[7]를 다녔는데, 광복 전 그 시절에 학교에는 수영장과 영사기가 있어서, 당시 학부모였던 대한극장 사장이 학교에서 직접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경기중학교 음악교사로, 후에 이대 음대학장을 지냈던 신재덕에게 피아노를, 작곡가 이건우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가 음악을 배우고자 한 계기는 어린 시절 접한 아놀드 쇤베르크다. 부유했던 덕분에 당시로서는 최신 전위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때부터 그는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보다는 음악 자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훗날 음악을 전공하면서도 행위음악을 작곡하고,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8]

    1949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부탁으로 무기구입을 위해 홍콩으로 갔다는 설이 있는 부친 백낙승[9]의 통역으로 따라가 홍콩의 로이덴 스쿨로 전학한다. 백남준은 이때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게 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여권[11]과 일본 비자가 있었던 백남준은 도쿄로 넘어가서 도쿄대학 미학/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12][13][14] 그리고 대학원을 당시 현대음악의 메카 독일 뮌헨 대학교로 진학하여 철학 석사와 음악학 석사를 취득했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현대음악 쪽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15] 이 때 같이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윤이상과 친분을 쌓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훗날 김민기 이전의 독일 괴테메달을 수여한 유이한 인물이 된다. [16][17] 그런데 독일에 있을 때쯤 존 케이지나 조지 마치우나스 등의 영향을 받아 행위예술을 접한 뒤, 행위예술가로 변신하게 된다. 머리카락에 먹을 묻혀 선을 그리는 것도 사실 백남준이 했던 퍼포먼스다. 이후 플럭서스의 일원이 되고, 미국 뉴욕과 독일을 오가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사실 백남준이 1964년 미국 뉴욕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었다. 무대에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때려 부수거나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예술을 하기도 했다. 1967년에 백남준이 누드인 첼리스트 샬롯 무어먼과 공연하다가 샬롯이 경찰에 체포당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사건은 유명하다.[18] 그 결과 백남준은 미국 예술계에서 제대로 된 예술도 못하고 기행을 일삼는 사람, B급 예술가 정도로 치부되었다.[19]

    다만 B급 예술가라는 것은, 당시의 미술계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언급일 수도 있다. 당시 60년대에서 70년대에는 서서히 퍼포먼스 예술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였고, 물론, 현대에는 현대미술하면 알 수 없는 무용과 행위들을 떠올리곤 하지만, 이전 예술은 단순히 회화아니면 조각 정도로, 이루어지는 오브제 중심적인 예술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오브제 없이 예술가의 행위 자체와 관람객이 느껴야하는 '경험' 위주의 예술은 매우 비주류라고 할 수 있으나, 개척기이자 태동기였다. 예술의 범위가 확장되는 시기였다고 생각하면 쉽다.[20]

    후에 퍼포먼스예술은 80년대 이후 대중예술에서도 독특한 무대연출(패션쇼, 콘서트, 오케스트라 등)로 발전하여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다. 제대로 된 무대연출을 할 줄 아는 아티스트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퍼포먼스예술이 현대예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이것은 종합예술의 영역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는 행위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80년대부터 과학기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TV로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이끌림인데 급기야는 로봇을 만든다. 이 로봇의 이름은 K-456으로 똥도 싸고, 말도 한다.[21] 그는 이 로봇의 최후를 연출했는데 뉴욕 한복판에서 같이 산책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난다. 21세기 최초의 참사라고 명명하였다. 최초의 로봇 교통사고다.

    오노 요코 때문에 잠깐 존 레논과 약간의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백남준은 그 당시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으나 요코는 존을 선택해 그와 결혼했고, 백남준은 꽤 충격 받았던 듯. 존 케이지 등과도 교분이 있었으며 비디오 아트 예술가 이전에는 피아노 행위예술가로도 알려진 바 있다. 무엇보다 연주하다가 도끼로 피아노를 부숴버리던 짓도 곧잘 했었다.


    1977년 자신과 같이 행위예술 작업을 했던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1937.8.2 ~ 2015.7.23)와 결혼했다. 구보타 시게코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에게 매료되어 자신의 남자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을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1963년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전위예술가로 소개한 기사를 본 것이다. 1년 후 백남준은 일본으로 퍼포먼스를 하러 갔다. 구보타 시게코는 이 퍼포먼스를 보러 갔고, 그때 백남준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신고 있던 구두에 막걸리를 부어 마시고, 붓 대신 머리를 이용해 거침없이 선을 그리는 것이었다. 엉망이 된 몰골로 퍼포먼스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백남준을 호감을 표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아주 섹시했다고.

    구보타 시게코는 괜히 그 공연을 보러 간 것은 아니다. 그녀도 역시 전위예술,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연주하며 전위성을 찾는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피아노를 도끼로 깨부수는 사람을 알게 되었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결국 결혼[22]. 이혼녀[23]인 구보타 시게코가 자궁암으로 불임 진단을 받고 엄청난 수술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백남준이 본인 명의의 의료보험 혜택을 활용하자며 먼저 청혼을 하고[24] 결혼 후에도 구보타 시게코의 불임 진단과 의료보험과 관련해서는 주변 친구들에게 전혀 입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면, 백남준의 구보타 시게코에 대한 배려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으며, 구보타 시게코 역시 이런 백남준의 배려와 사랑에 사후에도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 백남준과의 삶을 회고하는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을 출간하기도 했다. # 다만 양자격인 백남준의 조카와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갈등을 빚어서 이미지 하락을 겪기도 했다. 이후 암 투병중이던 구보타 시게코는 2015년 7월 23일 만 77세로 작고했다.

    “나의 사랑, 백남준”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뉴욕에 살며 돈이 없었는데 한국의 백남준 형님이 1만 달러를 보내줬다고 한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마지막으로 보내주는 돈이었다. 그런데 백남준은 그 돈으로 생계를 꾸릴 생각이 없었고, 컬러 텔레비전과 골동품이나 사다가 대뜸 불상을 하나 구입했다. 구보타 시게코는 이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돈을 다 탕진했는데 전시는 하고 싶어했다. 당시 ‘하늘을 나는 물고기’ 전시를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못하고, 사뒀던 불상과 TV로 ‘TV부처’를 만들어 전시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뉴욕 미술계에서 초대박을 친다. 동양의 오래되고 고고한 상징과 서양의 최첨단 기술이 마주보며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미지가 큰 감흥을 준 것이다. 결과는 좋았지만 백남준은 기본적으로 경제관념이 아주 부족했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만큼[25]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쓰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사업가 아버지의 길을 전혀 따르지 않고 음악과 미학에 관심이 깊었다. 다른 일화가 하나 있는데 어쩌다 구보타 시게코가 돈이 생겨서 백남준에게 용돈으로 아껴쓰라며 줬는데 저녁이 되자 돈이 하나도 없다 했다고 한다. 어디에 썼냐고 물으니 받은 즉시 나가서 비싼 치즈케이크를 먹느라 거기에 다 썼다고 답했다.

     

     

     

     

     

     

     

     

     

    https://namu.wiki/w/%EB%B0%B1%EB%82%A8%EC%A4%80

     

    백남준 - 나무위키

    대한민국 출신의 미국 국적 예술가. "백남준을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고만 규정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20세기에 이미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을 내다본 선지자였으며 인공위성까지 동원할 만큼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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